2024년 12월, 극장에서 <서브스턴스>를 보고 나오는 길에 이상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마치 예전에 <미드소마>를 보고 난 뒤 느꼈던 감정과도 비슷했어요. 찝찝하면서도 묘하게 해소되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계속 영화를 곱씹다 보니, 그 안에 깔린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복잡하고 여러 감정이 얽힌 영화인지라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습니다.

영화 중간중간, 늙은 남성들이 등장해 수를 바라보며 웃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가까워질 무렵, 수는 수많은 남성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죠. 그들은 그녀에게 어김없이 웃어보라고 강요하고, 수는 살짝 미소를 짓습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 수의 웃음이 애처롭게 느껴졌어요. 과연 우리가 말하는, 혹은 사회가 여성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Love yourself’ 는 진짜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 즉 ‘젊음, 완벽한 몸, 빼어난 미모’를 얘기하는 것일까요?

청춘, 젊음. 세상은 여전히 이 단어들을 예찬합니다. 반대로 나이를 먹는 일에는 온갖 부정적인 표현이 따라붙어요. ‘늙다’는 건 곧 투명인간이 되는 일인 것 같아요. 세상은 나이 든 사람만이 가진 연륜과 경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느려진 행동, 둔해진 사고, 변해가는 외모는 언제나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잣대는 언제나 여성에게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서브스턴스>는 늙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젊음지상주의를 다룬 영화입니다.

‘엘리자베스’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긴 전설적인 스타입니다. 50대가 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다이어트 프로그램 'Sparkle your life'를 진행하며 여전히 완벽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어요. 어느 날 방송국 사장의 험담을 엿들은 그녀는 “더 젊고 섹시한 여자를 쓰자”는 한마디에 자존감이 철저히 부서집니다. 과거 외모로 추앙받았던 그녀에게 ‘나이 듦’은 무엇보다 잔인한 현실이었을 거예요. 마치 엘리자베스 역을 연기한 배우 데미 무어의 인생과도 겹쳐 보이기도 하고요. 

그녀는 더 나은 ‘나’를 위해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몸에 주입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젊고 완벽한 또 다른 자신 ‘수’. 사람들은 완벽한 외모의 젊은 신인 ‘수’를 예찬하고, ‘엘리자베스’는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집니다. 그녀는 점점 자신을 잃고, 젊음이라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갑니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학교 동창과의 저녁 약속은 그녀에게 작은 구원의 신호였습니다. 드레스를 입고 치장까지 마친 그녀는 옥외 광고판 속 ‘수’와 자신을 비교하다가 결국 약속 장소에 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화장을 덧칠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무너진 그녀를 좌절하게 만든 건 결국 젊음 그 자체였습니다. (이 장면은 무려 45번이나 촬영했다고 하네요.🫢)

과도한 서브스턴스 오남용으로 결국 엘리자베스는 노파가 됩니다. 파뿌리처럼 변한 머리칼의 그녀가 거울 앞에 서자, 그 모습을 본 저도 무의식적으로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치 괴물을 본 것처럼요. 그러고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늙은 모습이, 나이 든 엘리자베스를 조롱하고 숨 쉬듯 ‘수’의 아름다움을 품평하던 양복을 뺴입은 방송국 관계자들의 얼굴과 다를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과 저는 무엇이 다른지 말이에요.

어쩌면 저도 젊음을 숭배하는 이 세상의 틀에 갇혀 있었던 건 아닐까요? 늙음에 대한 공포에서 우리 모두 해방되길 바라며! <서브스턴스>를 추천합니다.

editor 예예🌵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영화계는 서브스턴스로 떠들썩했습니다. 공포 장르의 이렇게 화제가 되고 흥행하기 어렵거든요. 특히 데미 무어의 열연이 특히 눈부신 영화였습니다. 데미 무어는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받게 됩니다. 그녀에게 제2의 전성기라는 말까지 생겼죠. 시상식에서 두 주연,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의 만담이 재밌어서 가져왔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둘의 만담이 이해가 되지 않을 텐데요. 이 궁금증을 가지고 영화를 보러 가봅시다. 영화는 만담과 달리 꽤나 무거울 수 있음에 주의해요!

과거의 영광은 영원하지 않아도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이 새겨질 정도로 대스타였던 그녀지만 과거의 영광입니다.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된 엘리자베스, 에어로빅 쇼에 나와 연예계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우연히 자신을 하차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충격에 빠집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차 사고까지 나고 말죠. 하필 자신의 생일이었던 오늘. 여러 감정이 복받쳐 오르며 눈물을 훔치던 그때 미형의 남자 간호사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밖으로 나온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코트 주머니의 무언가가 들어있음을 확인합니다. ‘서브스턴스’라고 적힌 USB, 연결하여 확인해 봅니다. ‘보다 나은 당신이 돼라’는 진부한 영상에 관심이 식어버렸지만 여러 심란한 마음과 과음으로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죠. 과연 그녀는 영상 속에 말 대로 보다 나은 스스로가 될 수 있을까요?

스파클, 여전히 반짝거림

이 영화는 꽤 잔인합니다. 말 그대로 잔인한 장면이 있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 보이는 비교가 말이 필요 없을 정도여서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이 잔인하다고 느꼈습니다. 위에서 데미 무어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요. 여러분이 영화를 다 보셨다면 그녀에게 서브스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싶어 질지도 모릅니다. 제가 묻고 싶어 졌거든요. 그녀에게 이 영화는 큰 의미로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영광은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음을 그 찬란함을 느꼈을 거라고요.

(웃음포인트)사실 손재주가 너무 좋은 엘리자베스

영화를 보다 보면 나름 웃긴 장면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손재주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무리 DIY 문화가 퍼진 미국일지라도 화장실에 비밀공간을 만들었는데 너무나 반듯하게 만들다거나 난해한 재료가 들어간 프랑스 요리도 막힘없이 척척 해내죠. 그녀는 무엇을 해도 다 해낼 거 같아요!

<우리들의 교복시절> 밋앤그릿 후기

editor 메이🔮 

지난 7월 12일, 에무시네마에서 <우리들의 교복시절> 밋앤그릿*이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부산국제영화제 때 정말 재밌게 본 영화인지라,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 밋앤그릿(Meet & Greet) : 관객과 출연진 또는 감독이 직접 만나 인사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

<우리들의 교복시절> 

1999년, 우리나라처럼 대만 역시 치열한 입시 경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어요. 주인공 ‘아이’는 대만의 명문고 중 하나인 제일여고의 야간반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 학교에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문화가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같은 자리에 앉는 주간반 학생과 쪽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주간반 짝궁인 ‘민’과 쪽지를 통해 친해지게 되고, 둘은 서로의 교복을 바꿔 입고 함께 놀러 다니며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성장통을 모두 담은 영화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서브스턴스 레퍼 쳌! 👀

editor 예예🌵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다 보면 "어? 이거 혹시 다른 영화 장면 오마주한 거 아냐?"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스탠리 큐브릭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특히나 몇몇 장면들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단순히 따라 한 게 아니라, 장면들을 조각조각 해체하고 세련되게 재구성한 코랄리 파르쟈 감독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오늘은 <서브스턴스>가 오마주한 영화들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영화들이 어떤 새로운 시각으로 녹아들었는지 발견해 보는 것도 정말 재미있답니다. 👀✨ 

발레리나

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