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화를 보기 전, 작은 고집이 있는데요, 영화를 보기 전에 웬만하면 예고편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제목을 봤을 때, 이 작품이 <오리엔탈 특급 살인>처럼 추리물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머쓱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를 소개합니다.

이 영화는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직전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 원작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카네이션 혁명은 1974년 포르투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건넸고, 군인들은 받은 카네이션을 총구에 꽂고 발포하지 않았던 무혈 쿠데타로, 포르투갈이 민주화를 찾은 사건을 말합니다. 그 혁명의 씨앗이 바로 영화 속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의 저자 ‘아마데우 프라우’입니다.

저는 늘 이런 역사와 마주하면, 혁명가들의 굳은 결의와 그들의 마음가짐은 어디서부터 오는지 경외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이끌었을까?’에 대한 질문이 들곤 해요. 그리고 이 영화는 아래 소개드리는 대사처럼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줬다 생각합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스위스의 베른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한 남자가 목숨을 끊으려는 여자를 구해주고, 그녀의 빨간 코트에서 책 한 권과 리스본행 기차 티켓을 발견하며 시작된다. 코트를 돌려주려 수업을 팽개친 채 무작정 기차역으로 달려간 라이문트는 충동적으로 리스본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책을 읽으며 마치 자신이 해왔던 고민의 답을 찾은듯한 느낌을 받은 그는, 책의 저자의 아마데우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

이 영화는 아마데우의 책 속 문장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나도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만 같았다. 나는 책을 읽을 땐 마음에 드는 구절에 밑줄을 긋고, 그 문장을 중심으로 여러 번 읽는 습관이 있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그 장면을 중심으로 한 앞, 뒷장면을 반복해서 돌려보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장면이 아닌 문장에 매료되었다.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마치 영화 속에 한 장면에 밑줄을 긋는 기분이었다.

우연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계획하지 않은 순간에 불쑥 찾아와 방향을 틀어버리는, 하지만 결국에는 가장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드는 힘. 라이문트가 포르투갈 작가의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손에 쥔 것도, 그 안의 문장들이 고민과 맞닿아있어 매료되었던 것도, 하필 리스본행 티켓도 함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우연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 그를 지금껏 살아온 세계의 바깥으로 이끌었고, 마침내 자신의 삶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다.

나도 그런 우연을 사랑한다. 친구가 예상치 못하게 건넨 책 선물, 우연히 듣게 된 노래 한 곡, 편지 속 뭉클한 한 문장, 또는 알고리즘에 의한 유튜브 추천 영상일지라도. 그 모든 것이 언젠가는 내 삶을 이끄는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아마데우의 책 속 문장처럼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우연이 만들어가는 영화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무작위한 우연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ditor 예예🌵

You can know the value of your worth if you just put down the measuring stick

editor 메이🔮 

2024년 12월, 영화관에서 <서브스턴스>를 보고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데미 무어의 연기가 정말 인상 깊었는데요,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는 말씀드리지 못하니, 영화관에서 그녀의 연기를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지금도 손가락과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꾹 참을게요!)

지난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더 웨일>의 브렌든 프레이저가 힘들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화려한 부활을 알린 바 있었는데요. 이번 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데미 무어가 무려 45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또 하나의 역사를 썼습니다.

특히 그녀의 수상 소감이 유달리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서브스턴스>의 주제와 연결되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 모두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들이 담겨 있어서 더욱 인상 깊었는데요. 그녀의 수상 소감을 아래 영상을 통해 함께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충분히 똑똑하지 않다고, 충분히 예쁘지 않고, 날씬하지 않고, 성공하지 못했다고, 그냥 전부 다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한 여성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절대 충분해지지 않을 거란 걸 아셔야 해요. 하지만 비교의 잣대를 내려놓으면, 당신의 가치를 깨달을 겁니다.

요리책이 아니라 영화 속 음식 모음집!

editor 예예🌵

지난 주말 성수동의 한 상점에 갔다가 우연히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어요. 영화감독들의 이름이 빼곡히 채워진 이 책의 표지가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부터 미야자키 하야오, 봉준호, 웨스 앤더슨, 그리고 데이비드 린치까지… 대체 어떤 책이길래 이렇게 다양한 감독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걸까? 궁금함을 참지 못했어요. 처음엔 감독들에 관한 책인가 싶었는데,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뜻밖의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흑백의 영화 스틸컷들, 그리고 그 속에 자리한 음식들. 알고 보니, 이 책은 영화 속 음식 장면들을 큐레이션 한 독특한 비주얼 아카이브였어요. 제목은 "Cooking With Scorsese: The Collection".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꽤 익숙한 영화들의 장면들이 담겨있었어요. <줄리&줄리아>의 요리 장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멘들스 케이크, 그리고 <기생충>의 짜파구리까지. 어떤 영화는 요리 과정 자체가 시각적 즐거움을 주고, 어떤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먹는 음식이 그들의 성격과 삶을 설명하기도 하죠. 때로는 먹는 행위 자체로 인물들의 감정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그런 장면들을 오직 흑백 스틸컷으로 담아낸 책이라니! 영화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그야말로 뜻밖의 반가운 발견이었어요.

상점을 떠나면서 이 책과의 만남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나가던 상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이, 일상 속에서도 영화를 다시금 느끼게 할 줄이야. 이런 예기치 않은 발견은 항상 흥미로워요. 사실 이 책은 일반 서점에서 많이 판매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요. 혹시라도  님도 우연히 어딘가에서 이 책을 발견하시게 된다면 꼭 한 번 펼쳐보시길 바라요. 맛있는 장면이 가득한 영화 속 세계로 빠져드셨으면 좋겠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