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화난 거 있어? 괜찮아. 이야기해.

영화를 보는 내내 ‘선이’의 이 말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 ‘선이’가 된 적이 있지 않나요? 비밀을 나누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멀리하고, 그 이유조차 모른 채 혼자 전전긍긍해야 했던 순간들이요. 그때 느꼈던 서운함과 ‘내가 뭘 잘못했을까’하는 자책, 그리고 어떻게 해도 친구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나에 대한 수치심까지.

어른이 된 지금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별거 아닌 듯 넘어가지만, 처음 이런 감정들을 마주했을 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친구가 전부인 시절의 ‘선이’ 또한 그랬을 거예요. 저 또한 비슷한 일로 힘든 시기를 겪은 적이 있어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때리고, 때리고…그럼 언제 놀아?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희망적이라고 느낀 건 선이의 어린 동생 ‘윤이’가 한 이 말 때문이었어요. 윤이는 장난스러운 친구와 놀다 다치면서도, 또 아무렇지 않게 그 친구와 함께 놀아요. 선이는 그런 윤이에게 그 친구와 같이 놀지 말라고 하죠.

“그러고 다시 같이 놀면 어떻게 해. 다시 때렸어야지.”

“또? 연호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연호의 말을 들은 선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저도 선이처럼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은 관계 속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그래도 같이 놀기 위해 조금씩 배워가는 ‘우리’에 대한 영화였어요. 그래서 이 장면이 저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한 영화

<우리들>은 마치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한 영화 같습니다. 세상이 너무 좁아서 친구가 전부였던 그 시절의 나에게 “괜찮아, 또 놀면 되잖아.”라고 다독여 주는 영화. 인간관계에 지쳐있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영화가 되길 바랍니다.

🎥 줄거리 (출처 : 네이버 영화)

열 일곱, 누구보다 평범한 소녀 한공주. 음악을 좋아하지만 더 이상 노래할 수 없고, 친구가 있지만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다신 웃을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전학간 학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와 노래는 공주에게 웃음과 희망을 되찾아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 학교의 학부형들이 공주를 찾아 학교로 들이닥치는데... 한공주,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과를 받는데 왜 제가 도망가야 하나요?

일반적으로 ‘공주’라고 한다면 큰 성에 살거나 화려한 삶을 사는 존재라고 알고 있죠. 그러나 이 영화의 공주는 그와는 정반대의 삶. 평범함 조차도 너무나 멀리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극 중 배역의 이름을 공주라고 하여 그 비극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두 시간 남짓한 영화를 보는 게 참 힘들었어요. 세상이 공주의 편이 아니라고 느꼈거든요. 가족도 친구들도 주변의 어른조차도 공주의 편이 되어 지지해 줄 사람은 없고 오히려 공주에게 자꾸 고개를 숙이게 만듭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들어요. 이 영화를 보신다면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영화 마지막 공주에게 유일한 빛이었던 친구가 외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친구가 너무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친구도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오히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다시 연락을 취했다는 사실이 공주의 진정한 빛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때는 늦어서 공주에게 그 빛이 닿기란 너무 멀리 와버렸지만요.

실화를 소재로 다룬다는 것

이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 속 모든 장면과 사건이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죠. 영화 속 모습을 보고 실제 이야기와 동일시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 기준으로 흥행한 영화입니다. 덕분에 소재가 된 사건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죠.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 사건이 알려지면 좋은 거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에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죠.

하지만 사건의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가 됩니다. 만약 유명 배급사가 배급했고 흥행을 하게 되었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사건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겠죠. 어쩌면 이 일로 인해 제도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인한 2차 가해와 가해자들을 찾는답시고 관계없는 사람이 신상털이가 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도 함께 따라올 겁니다. 이 영화는 피해자에게 동의를 얻지 않고 제작된 영화라고 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요. 윤리적인 문제는 영화 내 외적으로 끝나지 않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 줄거리 (출처 : 네이버 영화)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 2019년 청룡영화제 각본상 수상.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봐. 그럼 참 새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때는 2019년 9월, 부국제를 일주일 앞두고 혼자 영화관에서 어떤 작품을 볼까 고민하다가 <벌새>가 퇴근 시간에 맞춰서 상영을 하는거에요.(보통 독립 영화의 시간표는 아주 극악무도합니다.) 그래서 바로 예매를 하고 보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울음을 꾹 참으며 집에 오는 길에 손가락을 하염없이 움직였던 기억도 나네요. 그래서 가끔 지치고 힘든 날, <벌새>를 떠올리며 여전히 손가락을 움직여보곤 해요. 님께도 이런 작품이 있으신가요?

이 영화는 1994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1994년은 엄청난 폭염이 있었고, 우리나라 최악의 인재 중 하나인 성수대교 붕괴 사건도 있던 해였어요. 그리고 김일성이 사망한 해이기도 했고, 월드컵이 열렸던 해이기도 했죠. 너무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가득했던 그 해, 은희의 평범한 일상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작 중학생짜리에게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은희에게 함부로 손을 올리는 아빠라든가, 좋아한다고 해놓고는 그건 예전이었다고 말하던 후배라든가, 귀에 혹이 나서 수술을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 닥치기도 했고요. 이런 은희의 곁에서 담담히 이야기를 들어주다 한마디씩 툭 던지던 영지쌤의 존재가 얼마나 컸을까요?

제 삶도 언젠간 빛이 날까요?

저는 어른이지만, 여전히 갑작스레 닥친 상황이나 주변 인물들로부터 받는 상처, 반대로 제가 누군가에게 주는 상처가 놓인 상황에서 여전히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느껴지거든요. 그 상황을 잘 넘겨도 ‘왜 그렇게 했지?’라며 스스로 자책하기도 하고, 잘 넘기지 못하면 ‘난 왜 이렇게 부족할까?’ 하며 스스로를 하염없이 작아지게 만들곤 해요. 영지쌤은 영화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려도 보고, 내가 태어난 그 해와 지난 달들을 떠올리게 했던 영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위의 소제목은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 쓴 저의 한줄평이었어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크게 울려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님,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며 아주 작고 때론 큰 일들에 가끔 지치신다면 <벌새>를 꺼내어 보시길 추천드릴게요. 그런 님께 이 영화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래봅니다.

editor 메이🔮

🙋‍♂️ : 젊은 영화인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 : 싫어요.

editor 예예🌵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라는 책을 발견했어요. 로베르 브레송은 1900년대 활동했던 프랑스의 영화감독이에요. 작품은 많지 않지만, 영화의 본질을 끝없이 탐구하고 독특한 철학을 정립한 감독으로 유명하죠.

이 책은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기록한 영화에 대한 짧은 메모들을 모은 것으로, 마치 위대한 화가들의 습작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브레송은 영화에서 ‘연기’를 철저히 배제했어요. 이 책을 보면 그가 얼마나 ‘배우’와 ‘연기’를 싫어했는지 느낄 수 있는데요. 배우가 연기하는 것은 연극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델’이라 불리는 일반인을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움직이는 이미지와 현실 세계의 소리들로 ‘시네마토그라프’를 만들었어요. 이야기보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로 영화를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다소 무미건조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순수한 영화를 연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영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한 명이에요.

아래는 브레송이 젊은 영화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인데요. 혹시 이 영상을 보시면 브레송이 어떤 사람인지 흥미를 가지실지도!😂

2025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 

editor 메이🔮  

에디터 메이가 뽑은 기대작은 <이반리 장만옥>이에요. 올해 진행된 모든 영화제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잠시 시놉시스를 공유해 드릴게요!

[시놉시스]

레즈비언 바 <레인보우>를 운영하던 중년 레즈비언 만옥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가게를 정리하고 고향 이반리로 내려간다. 하지만 이반리의 이장으로 있는 전 남편의 방해 공작과, 여전히 배타적이고 편견 가득한 고향을 맞닥뜨린 만옥은 이장 선거에 나가기로 한다.

나우 유 씨 미 3

최초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