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대부분 이야기의 전개를 예측하기 쉽고 이미 알고 있는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영화가 꼭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를 일깨워주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글날을 맞아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킨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된 영화 <말모이>를 소개합니다.

말을 모아 민족을 지키다

‘판수’는 극장에서 일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아들과 딸을 가진 가장입니다. 판수는 갑자기 극장에서 해고되고 아들 덕진의 학비조차 내지 못하게 되어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의 가방을 소매치기하게 되는데요. 그 가방에는 돈이 아닌 황해도 사투리 원고가 들어있었습니다. 여차저차 판수가 학회 리더 조 선생의 은인임이 밝혀지고, 판수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조 선생은 판수를 학회의 심부름꾼으로 고용합니다.

당시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에 맞서 조선어큰사전을 편찬하고, 전국의 사투리를 모아 표준어를 제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판수는 학회에서 여러 심부름을 하지만, 문맹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습니다. 판수는 점점 학회에 적응하게 되며 한글을 배우게 되는데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제의 탄압은 심해지고, 결국 잡지 <한글>의 출간도 중간됩니다. 과연 일제의 눈을 피해 조선의 말을 모아 조선어큰사전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배우들의 열연을 보는 재미

<말모이>는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영화입니다! 믿고 보는 배우 유해진의 털털한 ‘김판수’는 무거운 주제 의식 속에서도 재미를 잃지 않도록 감초 같은 역할을 해주죠! 조선어학회의 대표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진 차가운 학자 ‘류정환’ 역을 맡은 윤계상의 덤덤한 연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중 저의 시선을 끈 캐릭터는 아역배우 박예나의 ‘순희’ 역인데요. 순수한 순희의 눈빛에 영화를 보는 내내 은은한 이모 미소를 멈출 수가 없었답니다. 🤗

영화 관람 전 알아두기! ‘조선어학회 사건’

영화 <말모이>의 배경이 되는 조선어학회는 1921년 주시경 선생이 설립한 ‘조선어연구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1926년에는 한글날의 시작인 ‘가갸날’을 제정하였고, 1931년 ‘조선어학회’로 개칭한 후 조선어 연구와 통일 및 우리말 큰사전 편찬에 힘썼습니다. 1942년 일제는 학생들이 일본어 대신 조선어를 사용한 것을 구실로 ‘조선어학회 사건’ 일으켰습니다. 총 33명의 한글 학자를 검거하였고 투옥된 학자들은 매우 혹독한 수감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중 이윤재, 한징 선생은 옥중 순국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해산당한 조선어학회는 광복 후 ‘한글 학회’로 재결성되었습니다. 압수된 사전의 원고는 1945년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되어 사전 편찬 작업이 계속될 수 있었고, 1947년 조선말큰사전 1권 간행, 1957년 우리말큰사전이 28년 만에 완간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우리말을 지킨 분들의 헌신 덕분에, 한글로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10월 9일 한글날이 그저 휴일이 아니라, 한글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영화 <말모이>를 추천합니다.

editor 예예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일본 유학 시절 도쿄. 모두의 존경을 받는 다카마쓰 교수를 만납니다. 교수는 후카다 쿠미라는 학생을 소개해줍니다. 그의 시가 너무 좋다며 조선에서는 출판할 수 없으니 번역을 통해 해외에서 출간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당시 도쿄에서는 조선인 징집령이 내려져 더 이상 안전하지가 않아 교토로 학교를 편입하고 본격적인 출판 준비를 합니다.

시간은 흘러 번역 준비가 다 되었다는 쿠미의 전화를 받고 교토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당시 일본인이라도 조선의 문자가 들어간 문헌을 가지고 있는 일을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시대의 혼란함 속 카페에서 만난 둘. 시간이 없다는 동주에 말과 동시에 불안한 종소리와 함께 누군가 동주를 향해 걸어옵니다. 자신의 앞날을 직감한 동주. 제목이 뭐냐는 쿠미의 질문에 조선어로 이렇게 답합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요. 그의 시는 세상에 공개 될 수 있을까요?

editor 여정🧭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만에 죽었다.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 일곱 구멍에서 모두 선혈이 흘러나왔다. 검은 멱목으로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가까이서도 얼굴빛을 분변 할 수 없었다.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인조실록, 재위 23년 6월 27일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이 적혀 있는 조선 왕조 실록의 문장 한 줄에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됩니다. 모두가 지나칠 수 있는 한 문장을 가지고 영화가 제작되다니. 너무 놀랍지 않으신가요? 전 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부분이 참 경이로울 때가 있더라고요. 역사적 사실(팩트)과 상상력을 통한 영화의 시나리오와 구성(픽션)을 합친 팩션*영화 <올빼미>입니다.
* 팩션 :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새로운 장르(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병자호란 후 삼전도의 굴욕**으로 인해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는 청나라로 가게 되어 8년간 타지 생활을 한 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기에 소현세자의 건강은 성할 리가 없죠. 소현세자에게 어의 이형익은 침을 놓습니다만, 병이 좀처럼 낫질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형익의 눈에 뛰어난 침술 실력을 가진 맹인 경수가 눈에 들어오게 되고, 경수는 궁으로 들어가 의료진으로 활동을 합니다. 사실 경수는 어둠 속에선 희미하게 볼 수 있어 밤에 돌아다니며 본인의 의술을 더 높이기 위해 공부도 하고 남몰래 약재를 연구하기도 해요. 그러던 어느 날……(역사가 스포이지만 꼭 영화를 통해 즐겨주세요!)
**삼전도의 굴욕 :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전을 계속하지만 결국 청나라에 항복하게 된다. 이에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삼전도로 나아가 청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게 된다. (출처 : 네이버 동영상백과)

'그 장면'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보았을 때의 전율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여러 커뮤니티와 SNS를 달궜던 올빼미의 ‘그 장면’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모든 관객들이 얼어붙었고 영화관에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저는 ‘헙!’하면서 입틀막을 했는데요. 영화관에서 다양한 영화를 보았던 저임에도 그런 분위기는 처음이었어요. (positive) 아직도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첫 눈’이 그립기도 해요.

계속 모르는 척 안 보이는 척 할 셈이냐?

<올빼미>의 안태진 감독은 <왕의 남자> 조감독 이후 약 17년 만에 감독으로 데뷔해 여러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쓸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편집상, 각본상, 촬영조명상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오랜만에 감독, 연출, 배우들의 연기력 삼박자가 이뤄진 영화를 보아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지금도 짜릿합니다. 사실 이러한 영화의 가장 큰 스포는 역사라는 말이 있듯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결말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조선왕조실록의 ‘단 한 줄’도 사실은 그 한 줄 위, 혹은 아래로 많은 문장들의 인과관계가 있을 거니까요. 그렇게 완성된 역사, 그리고 지금도 쓰이고 있는 역사 속 우리는 어떤 선택으로 ‘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요?

나야 달청소부 🌛 <La Luna>

editor 예예 🌵 

어제였던 10월 8일은 24 절기 중 열일곱 번째인 ‘한로’입니다. 한로는 ‘찬 이슬이 맺힌다’는 뜻으로, 이 시기부터 일교차가 커지고 기온이 더욱 내려간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요즘 밤하늘의 달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오늘은 님께 소개하고 싶은 단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2011년에 공개된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 <La Luna>입니다!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시각적 표현이 돋보이는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La Luna>는 특히 마음에 드는 작품인데요. 달 청소부 소년 밤비노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달을 청소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과 달을 아름답게 묘사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에요.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자제할게요!)

다가오는 10월 17일에는 보름달이 뜬다고 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름달 아래에서 <La Luna>를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러닝타임이 7분도 채 되지 않으니 부담 없이 고요한 순간을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

영화를 오래 기억하는 법 - 촬영지 여행하기
editor 메이🔮

지난 9월 26일, 여정님과 함께 ‘주성철 기자와 함께 하는 대만 영화와 여행’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gate 26'이라고 하는 여행 콘텐츠 플랫폼에서 주최하는 '이륙 살롱'에 다녀왔습니다.(자세한 정보는 gate26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세요!)

비단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도 마찬가지였어요.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에 나온 위스키바 ‘무용소’에서는 아예 김종관 감독 테마전을 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위스키를 마시며 공간을 즐기기도 하고, 영화 속 경험을 직접 경험하다 보니 지금도 서촌의 그 길을 걸을 때마다 <더 테이블>이 떠오르곤 합니다. 님도 좋아하시는 영화가 있으시다면 영화 촬영지로 여행 계획을 세워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아참! 전 8일과 9일, 짧은 일정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옵니다. 이번에는 총 5편을 보는데요. 그중 한 편은 대만 청춘 영화 <우리들의 교복 시절>도 있답니다. 재밌게 잘 보고 올게요! 후기는 다음 21호에 소개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