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은 뉴욕으로 떠나오기 전, 자신의 방 벽을 정리했습니다. 자신을 표현하던 각종 사진과 포스터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낙서를 흰색 페인트로 덮어 칠해요.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의하는 의식처럼요. 그것은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 아래 갇힌 세계를 허물고 진짜 자기 자신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레이디 버드’가 아닌, ‘크리스틴’이라는 본래의 이름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겁니다.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한때 자신의 날개를 꺾는 것 같았던 엄마에게 처음으로 진심을 전합니다.

독립이란 단순히 장소를 떠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별해지고 싶다는 강한 자의식 속에서 주변을 둘러싼 세상을 밀어내던 소녀가, 내가 떠나온 곳을 이해하며 점점 둥글어지는 것.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독립이 아닐까요?

그렇게 크리스틴은 레이디 버드로부터 독립했습니다.

editor 예예🌵

사람은 자라면서 일정한 나이와 준비가 되었을 때 가족의 품을 떠나 혹은 정들었던 곳을 떠나 독립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뿐만일까요? 동물도 어쩌면 식물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대 사회에서 독립이 필수는 아니지만 한 번쯤은 정신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내가 살았던 곳에서 떨어지게 되면 처음 느껴보는 새로움에 신날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내 공허함과 외로움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게 독립 아닐까요. 저는 ‘사람은 꼭 독립을 해야 하는 존재인 것일까’ 조금은 철학적이고 유치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어요. 아직 답은 생각 중이에요. 답변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 한 편을 보고 올게요.

Lady Bird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크리스틴. 주변 사람들도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주길 원하죠. 크리스틴은(난 레이디 버드라고!).. 레이디 버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사랑에 대한 고민도 많은 어른이 되기에는 준비가 더 필요한 존재입니다.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엄마의 잔소리는 때로는 정말 듣기 싫어하죠.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달리는 차에서 문을 열고 뛰어 내려 팔이 부러질 정도였으니까요. 엄마 입장에서는 얼마나 놀라고 어처구니가 없을까요? 이후 엄마의 잔소리는 줄어들기는커녕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자신조차 눈치 못 챘겠지만 이런 삶 속에서 레이디 버드는 사실 조금씩 성숙해져가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 아주 조금..? 화가 많은 것 같네요.

Lady Bird는 Ladybird가 될 수 없다

영화 초반 레이디 버드는 학생회장 선거 포스터를 두 장 만듭니다. 하나는 새의 몸통에 자신의 머리를 합성한 포스터, 다른 하나는 새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합성한 포스터. 이걸 레이디 버드라고 하나요? 글쎄요.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Lady’도 아니고 ‘Bird’도 아니며 둘 다 될 수 없습니다. 하다 못해 이걸 ‘Lady Bird’라고 하더라도 절대 고유한 존재인 ‘Ladybird’ 가 될 수는 없어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 단어가 아닌 두 단어가 필요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 중에 뭐가 되더라도 확실한 하나가 돼야 할 텐데 말이죠.

나는 크리스틴이야

영화 마지막 레이디 버드는 타 지역 대학교에 가게 되어 그토록 원하던 독립을 하게 됩니다. 먼 곳에서 레이디 버드는 깨닫게 돼요. 자신은 크리스틴이라는 것을요. 비로소 내가 살던 곳에서 떠나고 내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부릅니다. 레이디 버드는 자산이 살던 곳에 두고 왔어요. 그렇다면 이제 레이디 버드는 사라진 걸까요? 저는 그렇다고 답해 봅니다. 다만 이제는 스스로를 ‘Lady Bird’가 아닌 ‘Ladybird’로 볼 수 있는 존재가 될 테니까요.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저의 답변은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님과 나누는 것을 기대하며 미루고 있을게요. 그러니 부디 영화 보고 다시 찾아와주세요!

왜 날 레이디 버드라고 부르지 않아?

크리스틴은 본인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학교 선생님에게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불러 달라고 합니다. 변변치 못한 가정환경과 지긋지긋한 새크라멘토를 떠나고 싶어 하는 본인의 마음이 투영된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저 역시 10대 때, 레이디 버드처럼 스스로를 다른 이름으로 지어 부르진 않았지만, 별명을 만들었던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때 만난 친구들은 저를 그 별명으로 불러주곤 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지만, 자아를 찾아가는 그 시기엔 저를 표현하는 수단이 확실히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여섯 명인지도 몰라?

레이디 버드는 연극 오디션에 갔다가 대니에게 반합니다. 대니는 레이디 버드와 다르게 부유한 가정에서 화목하게 자랐고, 이에 대한 갈증을 느꼈던 레이디 버드는 추수감사절을 대니의 집에서 보낼 정도로 그를 좋아해요. 하지만 나중에 대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결국 헤어지게 되죠. 이후 대니가 눈물로 고백하며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자, 오히려 그를 위로해 줍니다.

그 후 밴드 멤버인 카일을 만나 반해버리고, 그로 인해 절친인 쥴리를 뒤로한 채 어울리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카일의 거짓말로 인해 또 한 번 상처를 받습니다. 영화 초반, 엄마와의 대화에서 보였듯이, 사랑보다는 "레이디 버드" 자체를 사랑받길 원했던 그녀에게 대니와 카일은 레이디 버드를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자아가 더 중요한 관계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레이디 버드는 또 한 번 성장통을 겪게 됩니다.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라는 네 예명이 참 예뻐

레이디 버드는 원하던 뉴욕의 한 대학에 합격하지만,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원했던 엄마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집니다. 결국 갈등이 해결되지 못한 채 독립을 하게 되어요. 뉴욕에 도착한 뒤, 아빠가 캐리어에 몰래 넣어둔 엄마의 편지들을 읽고, 그리고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을 "크리스틴"이라고 소개합니다.

<미키 17>의 음악 감독 정재일은 누구인가

editor 예예🌵

지난 주말 봉준호 감독의 신작 SF 영화 <미키 17>을 보고 왔습니다. 봉준호의 SF 영화라니! 봉준호식 블랙 코미디와 공상 과학이 만나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도 무척이나 재밌었지만, 역시나 저는 음악이 귀에 확 꽂히더라고요! 누가 봐도 봉준호 감독 영화구나하는 스타일의 음악들이었어요.

<미키 17>의 음악감독은 음악가 정재일이 맡았습니다. 정재일은 어릴적 부터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클래식부터 국악까지 아우르는 독특한 스타일을 가졌어요. 봉준호 감독의 2017년작 <옥자>의 음악감독을 시작으로 <기생충> 등등 많은 영화 음악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려 <오징어 게임>의 음악 감독도 했다는 사실! 이것만 들어도 이미 엄청난 음악가이죠. 🫢

영화를 보는 내내 제 귀를 사로잡은 음악이 하나 있었는데, 'Nasha'라는 곡입니다. 느리고 단순하게 시작해 점차 깊어지는 현악 선율이 등장인물 ‘미키’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듯해요. 정재일의 음악은 단순히 영화를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그 음악 자체로 하나의 서사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그의 음악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자룡 활 쏘다’ 영상을 추천하고 싶어요! 판소리 <적벽가>의 대표곡이며, 클래식 피아노와 결합해 아주 인상적인 공연을 펼치거든요. 처음 이 영상을 접했을 때 입을 딱 벌리고 계속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미키 17>을 보실 계획이 있다면 정재일의 음악 세계를 먼저 경험해 보신 후 관람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거예요. 😆

또 리사 로브너 감독의 ‹일렉트로니카 퀸즈: 전자 음악의 여성 선구자들›(2020)도 관심이 가는데요. 제가 곧 있으면 인공지능을 활용해 음악을 만드는 수업을 들을 예정이라서 관심이 가는 분야의 영화입니다.

상영은 5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영상관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날씨가 좋은 봄날. 나들이 가면서 예술에 빠져보는 시간 가져보는 거 어떨까요? 자세한 설명 및 예약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기

editor 메이🔮 

한국 시간으로 3월 3일 월요일 오전 9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저의 소소한 소원 중 하나가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생중계로 보는 것이었는데요, 마침 공휴일이었던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드디어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난 27호에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데미 무어가 <서브스턴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오스카 레이스*의 마지막 단계인 SAG*에서도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대부분이 데미 무어의 수상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아노라>의 마이키 매디슨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제95회 아카데미에서 <더 웨일>의 브렌던 프레이저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듯, 데미 무어 역시 <서브스턴스>의 이야기와 본인의 서사가 맞물리며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했기 때문에 저 역시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마이키 매디슨의 여우주연상 역시 너무나 납득이 갑니다. 마이키 매디슨이 연기한 <아노라>의 아노라는 정말 강렬했고, 오랜만에 누군가의 연기를 보며 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압도되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앞으로 그녀의 후속작들도 무척 기대됩니다.
*오스카 레이스 :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각종 영화제가 수상 결과와 분위기를 형성하며 주요 후보작과 수상자를 예측하는 과정 *SAG : SAG(Screen Actors Guild) 시상식은 미국 배우 조합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으로, 오스카 레이스에서 배우 부문 수상자를 예측하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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