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과거 영화 속에서만 가능했던 미래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이 있죠. 하지만 변화의 속도에 압도되어 기술을 활용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그 본질을 놓치기 쉽습니다.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아닐까요? 이번 Movie-ing 30호에서는 에디터들이 AI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담아봤습니다.

테세우스의 배
’테세우스의 배’라는 역설을 들어보셨나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미노타우르스를 무찌르고 아테네로 귀환한 테세우스를 기리기 위해 그가 타고 온 배를 보존하였다. 세월이 흘러 판자 하나가 망가지면 새 판자로 교체하였고 이렇게 세월이 흘러 배의 모든 판자가 교체된다면 이 배는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역설입니다. 영화 소개하기 전 웬 철학이야기인가 싶은데요. 만약 기술이 더 발전하여 우리의 몸이 로봇으로 교체된다면 우리는 인간일까요? 로봇일까요? 이 질문을 던지며 오늘의 영화 시작합니다.

로봇이 치안을 담당하는 무법지대

장소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강력 범죄로 손실되는 인력을 막기 위해 ‘스카우트’라는 로봇이 치안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로봇 한 대와 함께 개발자 디온은 갱단에게 납치됩니다. 그들은 로봇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싶었고 로봇이 갱단을 도울 수 있게 만들라고 명령하죠. 그러나 갱단이 납치한 로봇은 사실 고장 난 로봇이었고 디온이 빼돌려서 자신의 인공지능을 시험하려던 중 납치가 된 것이었죠.

“안녕. 나는 채피야”

새로운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람처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디온은 이 로봇에게 채피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채피는 갱단을 자신의 부모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채피는 갱단의 가스라이팅(?)에 넘어가 차량 탈취와 같은 범죄에 이용됩니다. 이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개발사는 비상이 걸렸고 채피를 없애라는 결정 승인이 나죠. 이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하여 채피에게 엄마나 다름없던 여자 갱단원이 죽고 개발자 디온 역시 심한 부상을 입죠. 이때 채피는 연구실에 있던 두뇌를 읽는 장치를 이용해 디온의 정신을 로봇에 이식하게 됩니다. 디온의 인간으로서 육체는 분명 죽었지만 디온은 정신은 로봇으로 옮겨 갔습니다.

30호는 영화가 아닌 넷플릭스 시리즈물로 찾아왔습니다. 총 6편으로 제작된 <카산드라>는 AI를 주제로 한 독일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님, 혹시 영화 <Her>을 보셨을까요? 저는 요즘 AI를 활용하면서 ‘<Her>이 정말 현실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카산드라>를 본 후에는, 이 또한 현실로 나타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산드라는 감정이 없고 음모를 꾸밀 수가 없어. 소프트웨어잖아.

이 드라마의 맹점 중 하나는 ‘AI’의 역할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Her> 역시 개봉 당시에는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모두가 그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하물며 AI가 없던 시절은 상상도 안간다는 말들도 많습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과연 AI는 우리 삶에 어디까지 침투해야 할까요? 혹은 AI가 우리의 삶에 깊게 들어와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게 된다면 이는 과연 개인 사유의 침해일까요? 인공 지능과 관련된 작품을 보면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한 편 당 한시간 이내의 길지 않은 러닝 타임이니, 이번 주말, <카산드라> 정주행을 하시며 제가 던진 질문에 함께 답을 내려보시길 바랍니다.

챗GPT, 그록3, 딥시크… 최근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공지능 모델들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어요. 이러한 개인용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죠. 알고리즘이 취향을 분석하고, 얼굴 인식 기술은 더욱 발전했으며, 이제는 영상까지도 인공지능이 제작해 주니까요. 기업들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형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요.

우리는 인공지능의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인류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을지 그 두려움도 공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인공지능의 이면을 잘 드러내주는 영화 <빅버그>를 소개해드릴게요. <아멜리에>의 장 피에르 죄네 감독이 그리는 2045년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진짜 책이 있는 책장은 드문데요.”

2045년 ‘알리스’의 집에는 가사를 대신해주는 로봇 '모니크'가 있습니다. 그녀의 집은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을 뚝딱 처리해 주는 ‘네스토르’라는 인공지능 시스템도 갖추고 있죠. 데이트 상대와 그의 아들을 집으로 초대해 시간을 보내며, 알리스는 할머니가 남긴 책과 그녀가 쓰는 다이어리, 손글씨 연습장을 자랑해요. (이 시대 사람들은 더 이상 실제 펜으로 손글씨를 쓰지 않는 것 같네요!) 최신 기술로 가득한 미래지만 여전히 레트로 감성을 사랑하는 알리스. 그녀의 집은 예기치 못한 방문자들로 북적이게 되는데요. 전남편 ‘빅토르’와 그의 애인 ‘제니퍼’, 그들의 결혼식 여행으로 집에 맡겨지게 될 딸 ‘니나’ 그리고 이웃 주민 ‘프랑수아즈’까지 총 7명의 인물이 알리스의 집에 모이게 됩니다.

“미안합니다. 요청 거부되었습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불쾌감을 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호모 리디큘러스'라는 제목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TV에서 계속 자동으로 켜지는 장면이었어요. 이 프로그램에서는 인간이 동물흉내를 내거나, 철장 안에 갇혀 최신식 휴머노이드인 ‘요닉스’의 통제하에 놓인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있었어요. 한때 인간이 동물을 길들이고 전시했던 것처럼, 이제는 기계가 인간을 그렇게 취급하는 세상이 온 걸까요? 한편 자율주행 시스템의 오류로 도로는 마비되고, 외부의 위험등급이 높다고 판단한 ‘네스토르’는 집의 출입문을 봉쇄한 채 사람들을 가두게 됩니다. “문 열어, 네스토르!” 아무리 외쳐도 요청이 거부되었다는 차가운 기계음만 반복할 뿐이었어요. 그 와중에 45도에 육박하는 열기에서 집 안 에어컨도 가동을 멈추고요. 당국의 허락 없이는 에어컨을 가동할 수 없다는 네스토르의 답변에 사람들은 탈출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 오히려 인간을 통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공지능은 과연 내 편일까?

<빅버그>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인류의 진보 이면에 자리한 두려움을 유쾌하지만 섬뜩하게 그려냅니다. 가사를 돕는 로봇 ‘모니크’의 외모는 영화 내내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떠올리게 하죠. (굳이 로봇을 인간과 비슷한 외형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이 드네요!) 점점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요청이 거부되었습니다.”라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언젠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지 섬뜩해지기도 합니다. <빅버그>를 보고 나면 편리하게 느껴지던 인공지능 서비스들이 새롭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AI 스피커에 명령을 내릴 때, 한번쯤 생각해 보세요. “이 인공지능은 과연 내 편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