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루어지고 있거든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외모 단장 한 뒤 옷을 갈아 입습니다. 그는 오래된 올드팝을 틀고, 새벽 일찍 출근을 하며 정해진 루틴 속에서 그만의 행복을 누리고 있어요. 이를테면 출근길마다 듣는 올드팝,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올려다 본 나무를 필름 카메라로 담는 것, 밤에 잠들기 전 독서를 하는 것들이 그의 작은 즐거움이자 행복입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런 히라야마에게 동생은 ‘아직도 화장실 청소 일 해?’라고 묻습니다. 무례할지도 모를 그 질문을 던지지만, 히라야마는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 중에 “네 잎에 잊혀진 세 잎의 꿈”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행운보다,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는 행복을 우리가 잊고 있었다는, <퍼펙트 데이즈> 와 그 의미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우리가 정말 놓치고 있었던 것은 평범함이 아닐까요?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언제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나날들 말이에요. 돌이켜보면, 어제는 오늘과 같지 않았고, 작년도 올해와 같지 않았더라고요.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귀갓길이었지만, 절 감싸는 공기가 왠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저도 히라야마처럼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음… 지금 이맘때만 느낄 수 있는 저만의 행복이 있는데요! 바로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공기 속에서 계절의 향기를 맡는 것이에요. 저는 계절의 변화를 공기의 냄새를 통해 알아차리는 순간이 참 좋더라고요. 님은 지금 어떤 행복을 느끼실지, 어떤 공기가 둘러싸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완벽한 하루에 생긴 균열

히라야마의 하루는 예측가능한 일들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서자마자 하늘을 보며 미소를 띠곤 합니다.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을 묵묵히 해낸 뒤 햇살이 드리운 나무 사진을 찍고 돌아온 집에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자야 할 시간에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반복되는 이 단조로운 일상을, 그는 “완벽한 하루”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초반에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찾는 행복에 대한 예찬쯤으로 생각했습니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틀에 맞춰져 있었거든요. 그러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의 표정 뒤에 불안과 슬픔이 묻어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하루는 반드시 “완벽해야만 하는” 하루처럼 느껴졌습니다.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이 철저한 루틴은, 어쩌면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예측이 가능하고, 예측 가능함은 마음의 평온을 보장해 주니까요. 그렇게 그는 세상의 변수를 차단한 채 조용히 혼자만의 하루를 살아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히라야마의 완벽한 하루에 작은 균열이 생깁니다. 가출한 조카 니코의 갑작스러운 방문 때문이죠. 니코의 등장은 히라야마의 완벽한 일상에 존재하지 않던 변수였습니다. 처음엔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니코 때문에 매일 반복하던 일을 잠시 미뤄두기도 합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히라야마가 크게 동요했던 순간은, 니코의 엄마이자 여동생인 케이코가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과거를 등진고 자신이 구축한 완벽한 하루를 살아가던 히라야마는, 어쩌면 누군가 그 세계를 무너뜨려 주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균열이 오히려 희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틈이 생겼다는 건 그 세계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니까요.

editor 예예🌵

Perfect Days

완벽한 하루에서 본 나의 표정

제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작년 8월 중순,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퇴사 후 휴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출근해 월요병에 시달릴 월요일 오전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저를 포함해 단 네 명의 관객만 있는 적막한 극장에서 조용히 영화를 감상했죠.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니 여전히 뜨거웠지만 하늘은 더없이 맑았습니다. 버스에 올라 집으로 가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진 한강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아마 저는 저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했을 겁니다. 님은 그 표정이 상상이 되시나요?

로마의 휴일🇮🇹

editor 메이🔮 

지난 주, 전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영화제에서 보지 못했던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와 때를 놓쳐 보지 못했던 <클로즈 유어 아이즈> 두 편과 함께 시작된 여행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선 <로마의 휴일>에 나온 ‘스페인 광장’과 ‘진실의 입’을 다녀왔습니다. 혹시 오드리 햅번처럼 젤라또를 드실 분이 계시다면 현재는 스페인 광장에서 젤라또를 먹을 수 없고, 경찰들도 주시하면서 보고 있으니 미리 주의 바랍니다! 재밌던 점은 그 장소에 가기만 했는데도, 그 장면이 그대로 떠올랐어요. 그리고 참 재밌게도, ‘그 계단’에만 사람들이 몰려있었다는 사실! 이래서 명작은 연령, 성별 불문하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인 거 같아요.

그리고 피렌체에 가서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온 곳곳도 구경하고 왔습니다. 두 주인공이 만난 기마상도 보고, ‘우피치 미술관’에 가서 작품 감상을 하며, ‘여기가 바로 그 장면이구나’ 되새기기도 했구요. 워낙 어렸을 때 본 영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한국에 돌아와 다시 영화를 보며 ‘여기가 내가 갔던 곳이라니’라는 생각에 벅차오른 감정을 느끼기도 했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바티칸 시국’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지난달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 중 하나였던 <콘클라베>가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올해 2025년은 희년(Jubilee)*이라 바티칸 시국에 사람이 정말 많았고, 현재 프란체스코 교황의 건강 악화로 인해 교황청 내부에서 콘클라베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듣고 바로 영화가 떠올랐어요. 무엇보다 바티칸 투어를 하며,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떠올랐고, 영화를 통해 알게된 사전 배경 덕분에 바티칸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콘클라베>는 지금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고 있으니, 시간이 되신다면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희년 :  성경(레위기 25장)에서 언급된 특별한 해로, 50년마다 돌아오며 사회적, 경제적, 영적 회복이 이루어지는 해를 말한다. 지금은 25년 주기로 변경되었으며, 이는 하느님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시간이며, 하느님이 친히 개입하여 인간의 삶을 새롭게 하시는 때로 여겨진다. 또한 희년에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천국의 문’이 개방되는데, 이 문을 통과하면 영혼이 정결하게 된다.

Portable Groove 09 - Amelie

editor 예예🌵

4월의 첫 ‘우영이’로 음악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 속 올드 팝을 소개할지, 얼마 전 우연히 알고리즘에 떠오른, 잊고 있었던 음악을 소개할지 고민이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

딸기 샤베트 노란색 레모네이드

시럽 없는 아이스커피 두 조각 치즈케익에

하얀 우유 주세요

예쁜 오드리 또뚜 상큼한 오드리 또뚜

사랑에 폭 빠지고 싶어

사랑을 찾아 나섰던 요정 오드리 또뚜

— Portable Groove 09 - Amelie 가사 中

Portable Groove 09 (포터블 그루브 나인)은 2000년대에 활동한 3인조 프로젝트 그룹이에요. ‘Amelie’라는 제목 때문에 영화 <아멜리에>와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가사에 <아멜리에>의 주연 배우인 ‘오드리 또뚜’가 언급되기도 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한 음악의 분위기가 마치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듯하기도 해요.

저와 동시대를 살아가신다면 싸이월드 BGM으로 이 음악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고리즘이 저에게 이 음악을 추천해 주었고 (요즘은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잘 듣지 않는데도요.) 마치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하기도 했어요. 까마득하게 잊고 산 시간이 압축된 듯한 기분, 오묘하더라고요. 이 음악을 들으며 님도 같은 기분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로비

헤레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