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화면이 아름다운 영화들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곤 해요.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멋진 풍경이나 배우들 때문만은 아니에요. 감독의 의도와 감정들이 장면에 스며들어 있을 때 진짜 아름다움을 느끼거든요! <컨택트>를 여러 번 관람했지만, 특히나 이번에는 “왜 이렇게 찍었을까?”라는 생각이 유독 많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드니 빌뇌브 감독이 <컨택트>에서 표현한 시각적 언어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수평, 반원, 그리고 수직

영화는 주인공 루이스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수평으로 넓게 펼쳐진 창문과, 그 너머로 보이는 고요한 수평선. 그 오른쪽엔 불이 꺼져 검게 보이는 둥근 반원 형태의 조명이 자리하고 있어요. 마치 이후에 루이스가 마주하게 될 외계 비행선을 암시하는 것처럼요. 계속해서 수평적인 장면들이 이어지다, 루이스가 병원 복도를 걷는 장면,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강의실에서 곡선, 특히 반원 형태의 이미지가 반복되는데요. 루이스에게도 어떠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루이스 앞에 나타난 외계 비행선. 드넓은 수평의 대지 위 공중에 우뚝 솟은 수직의 검은색 물체는 단숨에 영화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습니다. 중력을 무시하듯 허공에 떠 있는 이 거대한 물체는 보는 이를 숨 막히게 하는데요. 마치 지금껏 알던 세계의 법칙이 무너지는 느낌이랄까요!

전복된 중력

외계 언어를 해석하는 임무를 받은 루이스는, 드디어 외계 비행선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리프트를 타고 수직 방향으로 천천히 올라가며 위를 올려다보는데요,. 그곳엔 마치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우물처럼, 아주 멀리 작은 빛만이 보일 뿐이에요. 리프트가 조금 더 올라가자 갑자기 몸이 떠오르고, 이내 벽면에 착지하게 되는데요. 비행선 내부의 중력은 완전히 다르게 작동하고 있었던 거예요!

생각해 보면 외계 비행선 내부에 진입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다르게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지구인의 관점에서 수직이던 중력이, 이 비행선 안에서는 수평으로 전환되는 중력을 뒤집는 방식이 정말 신선했습니다.

시작과 끝이 없는 완전한 원

비행선 안에서 루이스는 드디어 외계 존재와 마주하게 됩니다. 수평으로 펼쳐진 반투명한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의 소통은 문자로 이루어져요. 하지만 이 문자는 우리가 아는 언어처럼 순차적으로 쓰이지 않아요. 그들의 언어는 시작도 끝도 없는 완전한 원형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루이스는 이 원형 문자를 하나씩 분석하며 해독을 시작하지만, 점차 문자에 담긴 이 외계 존재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됩니다. 시작과 끝이 없는 언어를 받아들인 루이스는 점차 혼란스러워집니다.

editor 예예🌵

처음과 끝은 나에게 더이상 무의미하다

인생 영화가 무엇인지 주변에서 묻곤 합니다.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좋은 영화들이 참 많이 스쳐 가지만, 오늘 소개드리는 <컨택트>는 늘 저의 인생 영화에 포함이 됩니다. 특히 무언가를 결정하고 난 뒤, 저의 선택이 옳고 그른지 계속 파고들게 될 때, 이 영화를 떠올리곤 해요.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고, 그 결과가 절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나는 이 모든 순간을 맞는다.

제가 이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위에 소개드린 대사에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 때 어떠한 편견을 가지고 경계를 해요. 이는 인간의 동물적인 감각이라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컨택트>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우주 생명체가 처음 도착했을 때, 인간들은 모두 경계를 합니다. 심지어 공격까지 하려고 해요. 하지만 그들의 언어가 해석되면서 해치지 않으려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이 보낸 메시지로 인간들은 희망을 찾습니다. 때론 모르는 사람이 우리에게 툭 던진 한마디가 울림이 되듯, 이 영화가 님께 어느 순간 나타난 외계 생명체처럼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외계 존재만큼이나 압도적인 음악 - 요한 요한손 (Jóhann Jóhannsson)

editor 예예🌵

영화 <컨택트(Arrival)>에는 외계 존재만큼이나 관객을 압도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영화음악이죠. 자칭 음악 덕후인 저는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역시나 음악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어요.

영화 음악을 맡은 요한 요한손 (Jóhann Jóhannsson)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작곡가입니다. 미니멀하고 실험적인 음악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을 남긴 그는, 이 영화에서도 강렬한 음악적 언어를 들려주는데요. 압도적인 비주얼의 외계 존재와 비행선의 이질적인 분위기를 음악으로 극대화합니다. 음악만 들어도 마치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낯선 물질로 이루어진 외계 비행선의 질감이 느껴질 정도예요. 스크린 너머 공간감을 확장시켜 주는 음악들이 귀에 채워져 황홀함을 느꼈습니다. 얼핏 듣기엔 전자음악 같지만, 알고 보면 현악기와 사람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실제로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작업을 했으며, 컴퓨터가 사용된 비율은 꽤나 적다고 해요.

"...he had spent a year writing the score for Darren Aronofsky’s “mother!” and at some point realised that the film was better with no music at all.

그는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영화 <mother!>를 위해 1년 동안 음악을 작곡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그 영화는 음악이 없어야 더 나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He proceeded to convince Darren to delete everything.

그는 대런을 설득해 자신이 만든 음악을 전부 삭제하게 했다.

It takes a real, selfless artist to do that. To realise the piece is better without you.

그건 진정한 예술가, 이타적인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작품이 자신 없이도 더 완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The most important part of creating art is the process, and Jóhann seemed to understand the process. The score needed to be written first in order to realise that it was redundant.

예술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과정'이다. 요한은 그 과정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 음악이 처음부터 불필요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선, 그 음악이 실제로 먼저 '만들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So in my view, Mother still has a score by Jóhann. The score is just silence… deafening, genius silence.”

내 생각에 영화 <mother!>에는 여전히 요한의 음악이 존재한다. 그 음악은 다만, ‘침묵’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천재적인 침묵.

타당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설령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 국가에 따라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이 언어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현재는 이 사피어 워프 가설은 말 그대로 가설일 뿐입니다. 언어라는 것은 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번역을 예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죠. 그 나라에 없는 표현이거나 대체할 수 없는 단어, 혹은 문화적 맥락을 알아야 해석가능한 고유어 등 단순 문자로는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짜파구리’를 어떻게 번역할지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 가설이 어떻게 적용될지 생각하며 보는 것도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입니다.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부터 나는 어떤 사고방식을 하도록 했을까 고민하는 것도 재밌겠네요.

영화 n차 관람, 어디까지 해봤니?

editor 메이🔮 

이번 36호 영화를 <컨택트>로 선정하고, 저의 n차 관람 영화들에 대해서 떠올려 보았어요. 일단 <컨택트>는 확실하게 5번 이상 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의 n차 관람 영화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올해는 <콘클라베>가 첫 n차 관람을 한 영화입니다. 남은 2025년, 또 어떤 영화가 절 설레게 만들고, n차 관람으로 이어질지 기대가 됩니다! 님도 n차 관람하신 영화가 있으시다면, 저희 [패들렛]에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씨너스 : 죄인들

하이파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