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에 개봉했던 <공동경비구역 JSA>는 2025년 2월에 재개봉했습니다.(관련 인터뷰) 재개봉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TV로 자주 접했던 작품이라 이미 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한국 영화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 <공동경비구역 JSA>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꼭 보시길 추천드려요!

김광석의 노래

극 중 이수혁 병장이 북측 초소로 향할 때, 테이프에 ‘이등병의 편지’를 녹음해 가져가고, 영화의 핵심 장면에서는 ‘부치지 못한 편지’가 흘러나옵니다. 시대적 배경과 맞물린 김광석의 노래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깊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OST인 정훈희·송창식의 ‘안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역시 OST가 함께 떠오를 정도로 영화 내에서 음악을 적재적소로 활용하는 박찬욱 감독의 OST 활용 방식이 25년 전 영화에서도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도!) 쓰였다는 사실이 꽤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영화예요. 감독으로서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연출작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한 뒤, 그는 죽기 살기로 이 작품을 준비했다고 하죠. “이번 영화까지 망하면 유작이 될 거다”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 박찬욱 감독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히 상상하게 됩니다.

그동안 제가 봐온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대체로 잔혹하고, 위태로우며, 때때로 불쾌감마저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항상 그 여운이 너무 강해서 몇 번이고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공동경비구역 JSA>도 결국 제겐 그런 영화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특히 결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이라면, 스포주의❗️🤣

영화의 후반부에서 중립국 스위스의 장교인 ‘소피’의 친 아버지가 과거 북한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는 판문점 초소 총격 사건의 수사에서 배제됩니다. 사건 당사자인 ‘이수혁’ 병장에게 그날의 진실을 말해주면 후임자에게 그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고 떠나겠다고 하죠. 그리고 그가 우정을 나눈 북한군 ‘오경필’ 중사의 안전도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해요. 그렇게 진실은 남은 사람들-소피, 이수혁 병장, 남성식 일병, 오경필 중사-과 죽은 북한군 정우진 전사만 알고 있는 이야기로 끝날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 순간 소피가 이야기합니다.

“아, 그런데 오 중사 증언 중에 하나 다른 게 있더라고요? 정우진은 남 일병이 아니라 이 병장 총에 죽었다는 거예요. 워낙 순식간이라 이 병장이 잘못 기억한 모양이죠? 아니면 오 중사가 틀렸거나요.”

그 후 용산으로 이송되는 군용차를 타러 가던 수혁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권총을 자신의 입 안에 겨눕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수혁이, 그날 ‘우진’을 죽인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진실을 스스로 입 밖에 꺼낼 수 없어 외면하고 있었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 타인(소피)의 입을 통해 말이 되었을 때, 그는 더 이상 그것을 혼자만의 기억으로 숨길 수 없게 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장면을 과장하거나 격렬하게 표현하지 않아요. 다만 정적 속에서 수혁의 표정을 조용히 보여주며 관객에게 그의 감정을 확실하게 전해줍니다. 저는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이 마지막 장면을 꼽고 싶어요. 말하지 않았기에 간신히 버티던 감정이, 누군가의 한 마디로 터져버려 무너지는 순간을요.

님에게 <공동경비구역 JSA>는 어떤 장면으로 기억되시나요?

editor 예예🌵

보이지 않는 선, 보이는 선

‘선’이란, 그어놓은 금이나 줄을 뜻합니다. 대부분의 선은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선도 있습니다. 관계에서 "선 긋는다"는 표현을 떠올려 보세요. 실제로 선이 그어진 건 아니지만, 그 감정의 깊이나 거리감은 어쩌면 현실의 선보다 더 길고 두꺼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눈에 보이는 아주 짧은 선이지만, 결코 쉽게 넘을 수 없는, 혹은 넘는 순간 위험해지는 선도 있죠. 이 영화는 이 두 가지 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선들을 떠올리며 함께 영화를 보도록 합시다.

공동경비구역 JSA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 콘크리트로 된 선 하나를 두고 남북한 군인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이수혁 병장은 이곳에서 헌병으로 복무 중입니다. 매일 이곳에서 선 하나를 두고 경비를 서고 있죠.

어느 날 야간 훈련 중 지뢰를 밟고 낙오하게 되는 사고가 납니다. 그 순간 지나가던 북한 군인 경필과 우진이 그를 도와줍니다. 고마움을 느낀 수혁은 경계근무 중 몰래 경필에게 돌에 편지를 묶어 보내기 시작합니다. 편지는 오가고, 어느 날 우진이 장난처럼 “놀러 오라”는 말을 적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정말로 수혁이 북한 초소에 찾아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반가워하는 세 사람. 그날을 계기로 서로 적군이라는 선을 넘어 형, 동생이 되어 우정을 쌓아갑니다. 이후 수혁의 방문은 점점 잦아지고, 그의 후임인 성식도 함께 가게 됩니다.

모두가 허리춤에 총을 찬, 위태로운 평화 속에서 자라나는 우정.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요?

너무나 쉽게 선을 긋는 건 아닐까?

이 영화는 어렵지 않습니다. 남북한의 현실을 조금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단순한 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들이 넘나든 선은 곧 분단이라는 커다란 현실이자, 우리 민족의 감정의 선이기도 하죠.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적 외교적으로 그어진 선은 간단한 문제로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긋는 선은 훨씬 더 쉽게 지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게 됩니다. 모두와 잘 지낼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너무 섣불리 관계를 끊어내며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영애, 송강호, 신하균, 이병헌.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이 배우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특히 이병헌의 환한 미소는 묵직한 영화의 마지막을 살짝 덜어주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넘 부러웠어요

editor 메이🔮 

메이 : 빠더너스가 칸 영화제? ㅋㅋㅋ 그린나래랑 같이 갔나

ㄴ 😶 : 부러우면 말을 하자ㅋㅋㅋㅋㅋㅋ

ㄴ 메이 : 사실 넘 부러웠어요

지난 5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34호를 참고해 주세요!) 제가 칸 영화제를 주의 깊게 보는 이유는, 그 해에 출품된 인기 있는 영화들 중 일부가 영화제를 통해 먼저 소개되기 때문이에요. 제가 그렇게 먼저 접한 작품들을 살짝 자랑해 보자면요 (큼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슬픔의 삼각형>이 있겠습니다 🥳 올해 칸 영화제 출품작 중, 제가 가장 기다리고 있는 작품은 <에딩턴>입니다.

‘딱대’, ‘군인 브이로그’ 등 재밌는 콘텐츠로 사랑받고 있는 빠더너스가 이번에는 칸 영화제에 코미디 영화를 수입하러 갔어요. 영화제에는 ‘마켓’이 따로 있어서, 출품된 작품들을 상영사나 배급사들이 둘러보고, 상영하기 위해 직접 들여오는 곳이라고 보시면 돼요. 올해 빠더너스는 ‘그린나래 미디어’와 함께 마켓에 간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올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빠더너스의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라는 콘텐츠를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본인들이 단편 영화를 찍기도 했었고요. 그렇게 콘텐츠에서 영역을 확장 해가는 모습이 멋있고, 또 한편으론 참 부럽더라고요. 여권을 들고 “유학 가려고 만든 건데, 프랑스에 또 가게 됐다”며 소개하는 부분과 칸에 도착해서 영화를 보며 나오는 장면들이 어쩜 그렇게 빛나 보이던지요.

나중에 저희 뉴스레터도 더 커지고 확장된다면(?) 영화제에 직접 가서 좋은 영화들을 먼저 보고, 독자 여러분께 소개드릴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그때까지 저희와 함께 영화 이야기 계속 나눠주세요🍿

신데렐라 언니가 코성형을 한다고? <어글리 시스터(The Ugly Sister)> 

editor 예예🌵

다가오는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눈여겨볼 한 편의 상영작을 소개합니다!

2025년 신작 노르웨이 영화인 <어글리 시스터 (The Ugly Stepsister)> 는 로튼 토마토 신선도 96%를 기록한 화제의 영화예요. 익숙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작품은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를 주인공으로, 미에 대한 뒤틀린 욕망을 그려내는데요. 트레일러를 보자마자 무섭고 잔인한 영화를 잘 못 보는 저도 “무조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외모를 가꿔 왕자의 눈에 띄는 것만이 여성의 유일한 출세이던 시대, 그 안에서 점점 파괴되어가는 주인공은 마치 <서브스턴스>의 ‘엘리자베스’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코 성형 수술, 속눈썹 연장, 다이어트 약-영화에서는 벌레 알로 표현-은 현실에서도 익숙한 것들이라 그런지 더욱 공포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최소 200년 이상 된 동화 속 이야기임에도, 지금의 우리가 처한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요. 최근 <서브스턴스>를 보고 과몰입했던 터라, 이 영화도 반드시! 관람할 예정입니다. 부디 제가 볼 수 있을 만큼만 잔인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ps. BIFAN ‘더 마스터: 이병헌’ 프로그램에서는 이번 호에 소개해드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도 상영합니다!

F1 더 무비

모네의 수련: 물과 빛의 마법